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역사상 남한에서 활동한 최악의 할머니 간첩이라 불리는리선실


남한에서 활동한 최악의 할머니 간첩, 리선실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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리선실

 – 1917년 제주 서귀포 출생

– 제주도 초등교육기관 신유의숙(현 가파초)에서 사회주의 사상을 접함

– 1948년 32살에 제주 4.3사건으로 이복동생이 사망. 이에 분노한 리선실은 남로당에 가입하여 부산에서 활동함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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– 남로당 활동이 어려워지자 남편과 양녀를 두고 월북

– 월북하여 조선로동당 경공업부 과장, 평양시 여성동맹 부위원장 등 요직을 거침

– 그러나 그녀는 관료 일보다는 혁명을 원했고, 1963년 김일성에게 ‘남파간첩이 되게 해 달라’며 탄원함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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– 1966년, 50세의 나이에 부산으로 남파되어 1973년까지 공작 활동을 함

– 1973년 평양에 돌아가 ‘남조선 내 지하조직 건설’ 지령을 받음. 이를 위해 당시 또래 북송 재일교포 ‘신순녀’의 모든 기억과 말투, 추억을 이식받아 신순녀 행세를 함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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– 일본으로 가서 신순녀의 가족을 만나고, 가족들은 그녀를 진짜 신순녀로 착각해 일본의 영주권을 받게 됨

– 1980년, 전라북도 전주시에 사는 신순녀의 언니를 만났고, 그녀도 리선실을 실제 본인 여동생 신순녀로 착각하여 대한민국 시민권을 따게 됨. 이때 그녀의 나이 64세였음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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– 그리고 그녀는 80년대부터 90년대 초반까지 10년이 넘는 기간동안 지하조직을 구성하여 ‘남한조선로동당’이라는 간첩조직을 만듦.

– 10년 넘게 활동한 이 조직은 1992년 안기부에 검거되어 난리가 남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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– 안기부는 리선실의 존재를 파악했으나, 그녀는 이미 1990년에 평양으로 돌아간 후였음. 강화도를 통해 돌아갔다고 함.

즉 그녀는 약 30년을 간첩으로 살며 50대부터 70대까지 공작활동을 하다가 북한에 돌아감.

한국에서는 그녀를 ‘할머니 간첩’이라고 불렀음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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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녀는 70대 중반 나이에 평양으로 돌아가 당 경공업부의 고위직을 맡았음.

그러나 남한의 30년 산업화 시대를 살다가 온 그녀에게 30년만에 돌아온 조국의 모습은 처참했음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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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래서 당시 김일성을 중심으로 했던 개혁개방파 인물로 활동했다고 함.

 나중에 김정일 시대에 들어 심화조 사건이 일어나고, 수많은 구 세력과 개혁개방파 세력이 쓸려나가는 과정에서 그녀도 처형된 것으로 보임.

30년을 외지에서 살며 조국과 혁명을 위해 살아온 그녀에게 남은 건, 늙은 자신의 모습과 처형이었음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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